공고·입찰 일을 하다 보면 "이 조항이 왜 이렇게 바뀌었지?", "시행령이 아직 안 나왔다는데 무슨 뜻이지?" 같은 순간이 옵니다. 법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한 번 이해해두면 이런 상황이 훨씬 덜 답답해집니다. 기본기부터 최근 통계까지 정리해봤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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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대한민국 법의 근간 — 헌법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
우리나라는 성문법 국가입니다. 법규범들이 위아래 서열을 갖고 있고, 아래 단계는 위 단계를 어길 수 없습니다.
▸ 헌법
최상위 규범입니다. 현행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정으로 만들어져 그해 10월 29일 공포,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됐습니다. 전문과 본문 130개 조항, 부칙으로 구성돼 있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총 9차례 개정됐습니다.
▸ 법률
국회가 만듭니다. 헌법 제40조는 "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"고 못박고 있습니다.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반드시 법률로 정해야 합니다.
▸ 시행령(대통령령) · 시행규칙(총리령·부령)
법률이 큰 틀만 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행정부에 위임합니다. 대통령이 정하면 시행령, 국무총리나 각 부 장관이 정하면 시행규칙입니다.
실무에서 중요한 지점이 여기입니다. 법률이 통과됐다고 바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, 위임받은 시행령·시행규칙이 나와야 세부 기준(금액 기준, 제출 서류, 자격 요건 같은 것들)이 확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. "법은 통과됐는데 시행령이 아직"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.
▸ 조례 · 규칙
지방자치단체의 자치법규입니다. 지방의회가 정하면 조례, 자치단체장이 정하면 규칙입니다. 헌법 제117조에 따라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만들 수 있습니다. 지자체 공고를 볼 때 근거 조례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죠.
정리하면 이런 순서입니다.
헌법 > 법률 > 시행령 > 시행규칙 > 조례 > 규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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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입법이란 무엇인가 — 법률안이 법이 되기까지
입법(立法)은 말 그대로 법을 세우는 일, 즉 법률을 만들고 고치고 없애는 국가 작용입니다. 절차는 대략 이렇게 흘러갑니다.
① 발의 또는 제출
법률안을 낼 수 있는 주체는 두 곳입니다(헌법 제52조).
- 국회의원: 국회법 제79조에 따라 1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발의할 수 있습니다. 발의의원 중 1명을 대표발의의원으로 명시합니다. 흔히 보는 "○○○의원 대표발의"가 이겁니다.
- 정부: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제출합니다.
이 밖에 소관 위원회가 직접 법률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(위원장 대안).
②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
국회의장이 법률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에 회부합니다. 실질적인 심사가 이뤄지는 단계이고, 사실상 법안의 운명이 여기서 갈립니다. 뒤에 나올 통계에서 보시겠지만 대다수 법안은 이 단계를 넘지 못하고 쌓입니다.
③ 법제사법위원회 체계·자구 심사
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에서 다른 법률과 충돌하지 않는지(체계), 표현이 정확한지(자구) 검토받습니다.
④ 본회의 의결
헌법 제49조에 따라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됩니다.
⑤ 정부 이송과 공포
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로 이송되고, 대통령이 15일 이내에 공포합니다(헌법 제53조 제1항).
이의가 있으면 대통령은 이 기간 안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. 이른바 거부권입니다. 재의요구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다시 의결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됩니다. 대통령이 15일 안에 공포도 재의요구도 하지 않으면 그 법률안은 자동으로 법률로 확정됩니다.
⑥ 시행
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합니다(헌법 제53조 제7항). 다만 실제로는 부칙에서 "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" 같은 식으로 따로 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. 공고 실무에서는 이 시행일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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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최근 4년간의 입법 — 숫자로 보는 성적표
여기서부터가 흥미로운 대목입니다. 발의는 폭증하는데 처리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.
▸ 제21대 국회 (2020~2024, 4년 임기 완료)
- 의원 발의 법안: 23,655건
- 법률 반영(가결·대안반영·수정가결): 약 7,220건
- 처리율: 약 30.5%
전체 접수 기준으로는 약 25,858건이 발의돼 9,063건이 처리, 처리율 약 35%로 집계되기도 합니다(집계 기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집니다).
▸ 제22대 국회 (2024년 5월 30일 개원~현재 진행 중)
2025년 12월 23일 기준 집계입니다.
- 접수된 법률안: 15,561건
- 처리: 3,544건
- 미처리(계류): 12,017건
- 처리율: 약 22.8% / 미처리율 약 77.2%
개원 초기 8개월(2024년 5월 30일~2025년 1월 31일)만 떼어보면 의원 발의 7,155건에 법률 반영은 771건, 반영률 10.8%에 그쳤습니다.
▸ 참고: 그 이전 국회들의 처리율
- 제18대: 13,913건 중 6,178건 (44.4%)
- 제19대: 17,822건 중 7,429건 (41.7%)
- 제20대: 24,141건 중 8,799건 (36.5%)
- 제21대: 약 30~35%
- 제22대: 약 22.8% (진행 중)
발의 건수는 대수를 거듭할수록 계속 늘어나는데 처리율은 반대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습니다. 22대는 같은 기간 대비 21대보다 접수 건수가 10%(약 1,405건) 더 많은데도 처리율은 20%대에 머물러 있습니다.
※ 수치 관련 참고사항
국회 법안 통계는 집계 시점과 기준(의원발의만 세는지 정부제출을 포함하는지, '처리'에 폐기·철회를 포함하는지 '법률 반영'만 세는지)에 따라 숫자가 상당히 달라집니다. 위 수치는 각각 출처에 명시된 기준일 그대로 적어둔 것이고, 22대 수치는 2025년 12월 23일 기준이라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겁니다. 정확한 최신 수치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(likms.assembly.go.kr)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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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실무자 입장에서 기억할 것
· 법률 통과와 실제 적용은 다릅니다. 시행일과 시행령 제정 여부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.
· 계류 중인 법안은 아직 법이 아닙니다. 뉴스에 "발의됐다"고 나온 내용을 확정된 제도로 오해하면 곤란합니다. 통계에서 보듯 발의 법안의 70~80%는 계류 상태로 남습니다.
· 지자체 공고는 조례를 봐야 합니다. 상위 법령만 봐서는 세부 기준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.
· 부칙을 읽으세요. 시행일, 경과조치, 적용례가 다 부칙에 있습니다. 기존 계약이나 진행 중인 공고에 새 법이 적용되는지 여부가 여기서 갈립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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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
· 대한민국 헌법 제40조, 제49조, 제52조, 제53조, 제75조, 제95조, 제117조
· 국회법 제79조
·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/ 국회 의안정보시스템
· 에너지경제신문 2025.12.27 보도(22대 국회 법안 처리 현황, 2025.12.23 기준)
· 비즈한국 2025.01.31 보도(22대 국회 개원 8개월 입법 분석)
법 체계나 입법 절차에 대해 더 궁금한 점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.